http://역사가 어려운 중등, 초등이 미리 알아 두면 정말 좋은 역사 이야기 1. 선사시대(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

수능까지 쉽게 가는 국사

역사가 어려운 중등, 초등이 미리 알아 두면 정말 좋은 역사 이야기 1. 선사시대(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

초등공부로수능잡기 2022. 10. 8. 01:52
728x90
728x90
SMALL
  1. 구석기, 신석기 시대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문자'이다.

문자로 기록되기 전의 역사를 '선사시대'라 부르고, 문자로 기록되어진 역사를 '역사시대'라 정의한다.

선사시대는 흔히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를 의미한다.(물론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나 보편적으로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 까지를 선사시대로 구분한다.) 더 나아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나누는 기준은 '도구'이다.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도구는 '뗀석기'이며, 신석기의 대표적인 도구는 '간석기'이며, 지금부터 구석기와 신석기의 상황과 특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시험에 반드시 나오는 구석기와 신석기

1)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 = 문자

2)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역사 = 선사시대

3) 문자로 기록된 이후의 역사 = 역사시대

4) 구석기와 신석기를 구분하는 기준 = 도구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는 70만년전부터 시작되었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자연에서 채집, 사냥을 통해 식생활을 구축해갔다.

그들은 한 지역에 막집을 짓거나 동굴에 거주하면서 그곳에서 열매를 채집하거나 사냥을 하며 지냈다.

그들은 아직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막집(대충 지은 텐트와 같은 집)과 동굴에 거주하다가 어느 시간이 흘러 먹을거리가 부족해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생활을 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불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추위를 피할 수 있었고, 사냥한 고기를 안전하게 먹을 수도 있었다. 더 나아가 구석기와 신석기 사이의 빙하기 역시 견딜 수도 있었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가축을 사냥할 때나 조리할 때, 큰 돌에서 떼어낸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사냥으로 사용된 뗀석기는 주먹도끼와 찍개, 찌르개 등이 있으며, 조리 도구는 밀개, 긁개로 질긴 고기를 밀어서 먹거나 긁개를 사용하여 짐승의 뼈를 분리하였다.

구석기 이후 빙하기가 지난 후 신석기 사람들은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살 수있게 되었다.

그들은 빙하기의 추운 날씨에서 갑작스럽게 기온이 높아지면서 물 속에 생긴 많은 플랑크톤들의 영향으로 많은 물고기들을 강가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농사를 짓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서 농사에 유리한 강가지역에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구석기의 막집보다는 조금 더 정교한 움집을 지어 생활하였다. 더 나아가 농사로 인해 먹을거리가 풍부해지자 사냥한 짐승들을 사육하게 되었고, 사냥과 채집으로 허비했던 시간에 가락바퀴(실패)와 뼈바늘을 이용하여 의복을 지어입고, 낚시에 쓰이는 그물도 만들었다. 더나아가 조개껍데기로 장식품과 가면 등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농사짓고, 남은 식량을 보존하기 위해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빗살무늬 토기는 아래쪽이 뾰족한 토기였는데, 땅에 박아 그 안에 음식을 두어 저장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겨울에 항아리를 뒷마당에 묻어 김치냉장고의 역할을 한 것과 유사하다. 그들의 농작물은 조, 수수, 기장이었고, 벼농사는 철기시대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역사학자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이와같이 신석기 시대에 농사를 시작한 것을 '신석기 혁명'이라 한다.

또한 신석기 시대의 도구는 구석기의 뗀석기를 갈아서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든 간석기를 사용하였다.

더 나아가 농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추수도구인 반달돌칼을 사용하였고, 갈돌과 갈판을 멧돌의 역할로 사용하였다.

농사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가족 중심의 '씨족사회'를 형성하였다. 그들은 가족 중심의 단위였기 때문에 평등사회였고,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는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신석기 후기에 농사가 발달되면서 구석기, 신석기의 평등관계는 무너지게 된다.

** 시험에 반드시 구석기 신석기 역사

1) 구석기의 도구? 뗀석기

2) 신석기의 도구? 간석기

3) 신석기 혁명은 무엇인가? 농사의 시작

4) 신석기 혁명으로 달라진 생활모습? 강가 유역에서 정착생활(움집)

5) 구석기의 생활모습? 사냥, 채집에 따른 이동생활(막집, 동굴)

6) 신석기 농사도구 중 추수 도구? 반달돌칼

7) 신석기의 농작물을 조리, 저장하는 유물? 빗살무늬토기

8) 신석기의 의생활은? 뼈바늘과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옷을 지어 입었고, 그물을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조개껍데기 등으로 장식품도 만들었다.

9) 신석기의 공동체적 성격? 농사의 노동력을 위한 씨족공동체로 평등사회

신석기 시대가 끝날 무렵, 농사가 발달되면서 각 부족마다 모두가 먹고도 남을 정도의 곡식이 생겼다. 

그러자 부족 내에서는 그것을 차지하려는 다툼들이 생기게 되었고, 다툼을 조정할 힘 있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사람들은 이 사람을 족장이라 부르며 부족의 지배자로 섬겼다. 

족장은 농사를 짓지 않아도 사람들이 바친 곡식으로 많은 재산을 가질 수 있었다. 

신석기 시대의 씨족 중심의 평등 사회에서 사유 재산이 형성되고, 빈부 격차와 계급이 형성된 것이다. 

족장은 농사를 짓지 않는 대신 마을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결정했고, 곡식을 뺏으려는 다른 부족으로부터 마을을 지켰다. 

또 마을에 곡식이 부족하면, 사람들을 이끌고 다른 부족에게서 곡식을 뺏기도 하였다.

 

부족 사이의 싸움은 전쟁으로까지 발전되었고,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사람들은 예전의 돌 무기보다 더 센 무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청동검이다. 

청동은 사람들이 토기를 굽다가 초록빛이 도는 돌에서 우연히 구리를 발견한 것으로 시작한다. 

이 구리로 화살촉과 도끼를 만들었는데 쉽게 무뎌졌다. 그런데 구리에 주석, 납, 아연을 섞었더니 단단한 금속이 되었다. 이

것이 바로 청동기이며, 청동칼, 거울, 방울 등의 무기를 만들어 쓰던 시기를 청동기 시대라 한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청동검은 돌로 된 무기보다 날카롭고, 위협적이었다. 또한 잘 닳지 않아 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 

청동검을 사용하는 부족은 돌을 무기로 사용하는 부족보다 강한 힘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든 청동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들기 어렵고, 재료도 귀해서 힘 있는 지배자만이 몸에 지닐 수 있었다.

 

한편 족장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 역시 주관하였다. 

족장은 청동 단추가 달린 신을 신고, 청동 거울을 목에 걸고, 청동 방울을 흔들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전쟁만큼이나 중요했다. 과학적 농사 기술이나 좋은 농기구가 없던 이 시절에는 하늘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족장을 하늘의 뜻을 알고, 사람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해주는 막강한 사람으로 받들었다. 

족장은 죽어서도 막강한 힘과 권위를 가졌기 때문에 큰 고인돌로 무덤을 만들어 높은 언덕에 세워두었고, 그곳에서 마을 행사나 제사 의식을 드리기도 하였다.

 

기원전 1000년 무렵에는 한반도 서북부 일대에 청동기 문화가 형성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곳에서 청동으로 만든 도구를 쓰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처음에는 조그만 부족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살다가 힘센 부족이 전쟁을 벌여 전쟁에서 진 부족의 곡식과 영토를 빼앗고, 그 부족 사람들을 노비로 삼기 시작했다. 점차 전쟁이 잦아지고, 힘이 센 부족을 중심으로 작은 부족들이 하나 둘 통합되었다. 

이렇게 하여 조선이라 불리는 큰 나라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 나라가 바로 우리 겨레 최초의 나라, 고조선이다.

* 시험에 나오는 청동기 역사 **

1) 계급 발생의 원인? 잉여생산물

2) * 청동기와 철기는 무기나 제사의식(청동방울)을 위해 사용되었고, 절대로 농사를 짓는 데 사용되진 않았다.(헷갈리게 시험에 많이 내는 부분)

3) 지배층의 권위와 힘을 나타낸 유물? 고인돌

728x90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