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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어려운 중등, 초등이 미리 알아 두면 정말 좋은 역사 이야기 6) 남쪽의 여러 나라 - 삼한

초등공부로수능잡기 2022. 10. 25.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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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94년, 고조선의 준왕은 중국에서 건너온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남쪽으로 쫓겨났다. 

준왕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을 이끌고 한반도 남쪽의 진국에 도착했다. 

준왕이 정착한 진국은 이미 중국과 교류할 정도의 세력이 갖추어져 있었고, 일찍부터 청동을 이용해 무기,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그러던 중 기원전 108년 고조선 사람들이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변화가 생겼다. 고조선 인들은 진국에 철기 문화를 전파했고, 쇠를 다루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이 지역의 세력들을 쇠의 무기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한반도의 남쪽에는 78개나 되는 크고 작은 나라가 생겼고, 큰 나라는 인구가 1만여 호나 되었고, 작은 나라는 600~700호 정도 되었다. 

작은 나라들은 인구가 적고 힘이 약해 다른 나라들의 침입을 많이 받았고, 때로는 이웃 나라들과 동맹을 맺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남쪽에는 세 개의 큰 연맹체가 형성되었다.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의 마한 연맹체, 경상북도 지역의 나라들은 진한 연맹체, 경상남도 지역의 나라들은 변한 연맹체를 만들었다. 

마한 연맹체는 54개의 나라가 합쳐진 것이고, 변환과 진한 연맹체는 각각 12개의 나라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연맹체 중에서 가장 큰 나라의 대표가 왕과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 연맹체를 이끌어 갔다.

이와 같은 세 연맹체를 삼한이라 불렸다. 

그 중 마한의 대표는 목지국으로 목지국은 삼한을 통틀어 가장 큰 나라였다.

목지국이 가장 강했을 때의 왕은 진왕으로 중국에서도 진왕이 삼한을 대표하는 왕으로 인정했다. 한편 진한과 변한은 비록 나라의 수는 적었으나 철이 많이 나서, 철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운 나라들이었다.

특히 고조선의 유민 세력이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한 곳이 진한의 어느 나라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철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다. 진한의 대표 나라는 경주 지역의 사로국이었고, 변한의 대표 나라는 김해의 구야국이었다. 구야국은 삼한 중 철 생산력이 가장 많은 지역을 왜, 낙랑군 등에 철을 수출했다.

 

연맹체 나라들은 큰 나라를 중심으로 모였던 것처럼 각각의 나라는 큰 고을을 중심으로 작은 고을들이 모여 있었다. 여러 고을 중에서 가장 큰 고을은 국읍이었고, 다른 작은 고을들은 읍락이었다. 

여러 고을의 사람들은 저수지를 만드는 일처럼 여러 고을이 힘을 합쳐야 되는 일이 생기면 국읍이 중심이 되어 일처리를 했다. 국읍의 우두머리는 신지나 견지로 불렸고, 작은 고을의 우두머리는 읍차나 부례로 불렸다. 국읍의 우두머리는 하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 또한 실행했다. 이와 같은 삼한의 제천행사는 농사가 끝난 10월이 열렸다. 그러나 농사가 발달했던 마한에서는 씨앗을 뿌리는 5월에도 축제가 열렸다(단오로 계승). 마을 사람들은 제천 행사가 열릴 때 모두 모여 음식을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했다.

삼한 사람들은 춤을 출 때, 박자에 맞춰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몸을 낮추었다 올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춤을 추었고, 음악을 연주할 때 현악기를 즐겨 사용했다. 또한 부여, 옥저, 동에의 사람들이 금이나 은을 보물로 여기는 것과는 달리 삼한 사람들은 유리구슬을 보물로 여겼다. 이는 기원전 200년 대 중국에서 유리구슬을 만드는 기술이 전래된 후부터 생긴 풍습이었다. 

 

삼한은 한반도 남쪽이라 기후가 따뜻했고, 높은 산 보다 넓은 평야가 많아 먹을거리도 많고, 생활에 여유가 있었다. 토지가 기름져 일찍부터 보리, 콩, 조, 수수 등의 곡식을 많이 길렀고, 벼농사도 많이 지었다. 또한 벼농사 시 필요했던 저수지와 물길도 만들었는데 쇠로 된 농기구를 통해 수확량도 증대했다. 특히나 고조선의 유민들로 쇠를 만드는 기술을 받아들인 뒤부터 변한과 진한은 풍부한 철을 이용해 여러 제품들을 만들었다. 특히 철광석에서 쇠를 뽑아내어 여러 도구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 낙랑군, 대방군, 왜 등으로 수출했으며 변한에서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쇠를 돈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삼한에는 또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을 만들고, 베 옷감을 만들어 옷을 해 입었다. 특히 변한의 베는 무척 유명해서 낙랑군, 중국 등에서 귀한 물건으로 여겼다. 삼한 사람들은 주로 베옷을 많이 입고, 가죽신이나 짚신을 신었다.

 

삼한은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와 천군이라 불리는 제사장이 따로 있는 제정분리 사회였다. 천군은 소도 또는 솟대라고 하는 특별한 지역에 머물며,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을 맡았다. 소도는 거룩한 장소로 천군 외에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으며, 죄인이 그곳으로 도망을 쳐도 군대가 들어올 수 없었다. 소도의 입구는 큰 나무에 북, 방울을 매달아 구분하였는데 마을 입구에 큰 나무를 심거나 기둥을 세우는 풍습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또한 나무 기둥 위에 새(오리)를 얹어 하늘 세계와 인간 세계를 연결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 역시 그대로 남아있으며, 마을 입구에 세운 큰 나무 기둥은 '솟대'라 부른다.

(힘 있는 왕을 중심으로 재구성 된 삼한)

삼한 지역의 78개나 되는 나라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를 중심으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마한은 목지국을 무너뜨린 백제국을 중심으로, 진한은 사로국을 중심으로, 변한은 구야국이 발전한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모여 백제, 신라, 가야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백제로 통합된 마한)

중국에서도 알아주던 삼한의 대표 나라 목지국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백제국의 큰 세력으로 위기를 겪는다. 백제국은 목지국을 쉽게 함락한 후 낙랑군, 대방군과 독자적으로 교류하고, 중국 동진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였다. 백제국은 땅이 넓어지고, 힘도 강해지자 왕을 세우고 나라의 법을 만들어 국가의 기틀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연맹 형태가 아닌 백제라는 국가로 발전하여 다른 지역을 직접 다스리게 된 것이다.

 

(신라로 통합된 진한)

사로국은 고조선 유민들로부터 쇠를 만드는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진한을 대표하는 나라가 되었다. 사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섯 개의 큰 고을 대표들로 이들은 나라의 중요한 일이 생기면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나랏일을 결정한 후 반드시 지켰다. 사로국은 강력한 쇠를 통해 주변국을 정복했고, 점점 커지자 여섯 고을 대표들 중 왕을 뽑게 된다. 사로국 역시 연맹 형태를 벗어나 국가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가야로 통합된 변한)

변한은 다른 지역보다 철이 많이 생산되어 일찍부터 철의 수출이 활발했다. 변한의 대표 나라 구야국은 김해 지역으로 바다와 가까웠고, 철의 주요 수출지가 되었다. 또한 구야국은 다른 곳보다 발달한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면서 이름을 금관가야로 바꾸었다. 하지만 금관가야는 백제국이나 사로국처럼 주변 지역을 완전히 다스리는 국가로의 발전은 이룩하지 못했다. 변한의 여러 나라들은 연맹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고, 후에 이름만 가야 연맹체로 바꾸었다.

* 시험에 반드시 나오는 내용

1) 삼한의 특성 = 정치와 종교의 분리

2) 삼한의 정치 지도자 : 신지, 부레, 읍차 ( 마을장 )

3) 삼한의 종교 지도자 : 천군

4) 천군은 소도 지역에 머물렀는데, 소도 지역은 솟대로 입구가 표시된 지역으로 

일반 지역과 구별된 신성구역이었다.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쳐도 정치 세력이 그를 쫓지 못하는 구별된 곳이었다.

5) 삼한의 발전 : ( 마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 변한은 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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