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의 수용(4세기)
삼국이 나라의 틀을 갖춰 갈 무렵, 중국은 5호 16국 시대라 하여 많은 나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혼란의 시대를 겪게 된다. 고구려는 이 때, 전진이라는 나라와 교류가 활발했다. 백제는 고구려와는 달리 바닷길을 이용해 중국의 남쪽 지역의 동진이라는 나라와 교류를 했다.
또한 고구려와 백제는 이때 중국에서 불교를 수용하게 된다.
고구려는 372년 전진의 승려 순도가, 백제는 384년 동진의 마라난타가 불상과 불경을 가져와서 불교를 전했다.
이렇게 전해진 불교문화는 다시 백제를 통해 왜로 전해졌는데, 왜로 건너난 백제인들이 불교, 한문학, 도자기, 무기 등의 기술도 함께 전했다.
2. 철기의 수용(3세기)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시작될 쯤 중국은 위, 촉, 오 삼국시대가 시작되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조상들은 기원전 100년경부터 중국에서 철기 기술을 받아들여 전쟁 무기나 농기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철기 기술을 갖추고 힘이 생기자, 삼국은 대외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데, 고구려는 중국에서 한자로 된 책이나 비단 같은 물건을 들여와 백제나 신라에 전해 주었다.
백제나 신라는 고구려 외에 평양 지역의 낙랑군에서 중국 문물을 구했으며, 가야도 낙랑군을 통해 더 발전된 철기 기술을 받아들였고, 생산한 철제품을 중국이나 왜로 수출했다.
3. 군대의 교류(6세기)
신라가 뒤늦게 나라의 기틀을 갖추면서(4세기), 삼국의 경쟁 관계가 치열해졌다. 더 나아가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힘이 커지자, 수나라와 국경을 접한 고구려는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삼국은 다른 나라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동맹국이 필요하게 되었다.
먼저 고구려는 수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지역의 돌궐과 동맹을 맺고,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수나라와 동맹을 맺었다. 신라와 적대 관계에 있던 백제는 고구려와 힘을 합치기로 하고, 왜를 끌어들였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는 돌궐, 고구려, 백제, 왜로 이어지는 남북 세력과 수나라와 신라로 이어지는 동서 세력으로 나뉘게 된다.
4. 진정한 삼국의 문화교류(5세기)
중국은 5호 16국 시대가 끝나고, 북쪽 지역은 북위라는 나라가, 남쪽에는 송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북위, 백제는 송나라와 교류가 활발했다.
당시 중국은 인도에서 큰 바위를 뚫어 절을 짓는 방식을 들여와서 중국 최초의 석굴 사원인 윈강 석굴을 짓기 시작했다.
이러한 석굴 방식은 나중에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는데, 경상북도 군위의 삼존석불은 바로 윈강 석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석굴 방식은 이후 돌에 부처를 새기는 마애불이나 인공 석굴인 석굴암으로 변형되어 이어졌다.
참고) 5. 고구려와 서역의 교류
서역은 한국, 중국, 일본인들이 중국의 서쪽에 있는 나라들을 부를 때,
사용하던 말이다. 넓게는 이란, 소아시아, 이집트까지를 서역이라 하고, 좁게는 타림 분지가 있는 곳 주변을 서역이라 했다. 즉 중앙아시아 일대에 있는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을 서역으로 보면 된다.
고구려는 서역의 나라와 동맹을 맺어 힘센 나라를 견제하기도 했다.
당시 수나라를 멸망시킨 당나라 태종은, 수나라의 양제처럼 고구려를 반드시 정복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또한 당나라의 힘이 커지자, 서역의 돌궐 역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에 고구려 보장왕은 당나라를 견제할 만한 세력으로 돌궐과 협력하고자 했다. 이에 서역의 사마르칸트까지 교역로가 열리게된다.
고구려인들은 서역으로 가는 길을 개척한 후, 서역의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프라시압까지 사신을 보냈고,
서역을 지나 유럽의 로마까지 교류했다. 고구려인들은 다른 나라와 사신으로 갈 때 조우관을 썼는데 아프라시압(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벽화에도 조우관을 쓴 고구려의 두 사람을 볼 수 있다.
6. 삼국의 한강 차지
백제의 근초고왕 : 4세기 | 고구려의 장수왕 : 5세기 | 신라의 진흥왕 : 6세기 |
근초고왕은 백제를 해상 강국으로 만든 왕으로 한강 유역에 자리 잡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왜로 가는 바닷길을 개척할 수 없었을 것이다. | 427년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는 남하정책 이후, 475년에 백제의 도읍인 한성을 빼앗고, 한강유역을 차지하였다. 신라와 백제의 협공을 받기 전까지 한강은 고구려의 영역이었다. | 561년 백제와 힘을 모아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 그 후 몇 년 뒤 백제가 차지했던 곳까지 빼앗아 그 후 쭉 신라는 한강을 차지하게 된다. |
7. 신라에 온 로마의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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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 마립간과 눌지 마립간이 신라를 다스리던 때에, 바다 건너 침입해 온 왜를 몰아내기 위해 고구려 군대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신라는 고구려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 때 고구려와의 교류도 많아졌다. 그리하여 고구려에 가거나 고구려를 거쳐 중국까지 가서 서역의 물건을 들여오고, 로마의 물건을 접할 기회까지 생겼다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또한 이 때, 로마에서 만든 유리 역시 들여왔을 것이라 짐작하낟. 당시 신라인들도 유리를 만들 줄 알았다. 하지만 로마에서 온 유리그릇은 훨씬 화려하고 이국적이서 귀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왕족, 귀족들은 로마의 유리를 가졌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무덤에도 넣었던 것으로 예측한다. |
8. 왜와의 교류
태자의 스승, 혜자 스님 (고구려)
고구려의 승려였던 혜자는 595년 왜로 건너갔다. 20년 동안 왜에 머물면서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는데, 그는 일본 불교를 크게 일으키고, 이웃나라의 앞선 문물을 수용하여 왜의 문화에 큰 이바지를 한 사람이다.
화가 담징 (고구려)
담징은 고구려의 승려이자 화가로 신라에 머물다가 왜의 초청을 받고, 610년 백제를 거쳐 왜로 건너갔다.
담징은 학문, 그림, 여러 기술이 뛰어났으며, 종이와 먹 만드는 기술, 맷돌 만드는 기술 등을 전했다.
담징은 고구려가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호류사라는 절의 금당벽에 ‘사불정토도’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은 ‘금당벽화‘라고도 불린다.
- 오경박사 왕인 (백제)
백제인 아직기는 근초고왕 때 왜로 건너간 사람이다. 어느 날 왜 왕이 아직기에게 백제의 뛰어난 박사를 청하게 되었고, 아직기의 대답에 따라 405년 왜의 왕은 백제에 사신을 보내 왕인을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왕인은 왜에 논어, 천자문을 전했다. 왕인은 오경박사로 왜의 태자와 신하들을 가르쳤으며, 왕인의 자손들은 대대로 ‘가와치‘라는 곳에 살면서 기록을 맡아보는 사관이 되었다.
9. 삼국의 연합
1) 4세기 고구려+신라 vs 백제
고구려와 백제는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에서 크게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두 나라 사이의 경쟁이 심해졌고, 두 나라의 왕들이 죽는 일도 발생했다(고구려의 고국원왕이 백제의 근초고왕에게 전사). 한편, 신라는 산으로 둘러싸인 경상도 지역에 있어 안전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문물을 접하거나 다른 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일들이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늦었다. 신라가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기회는 백제보다는 고구려를 통해서 가능했으며, 고구려는 신라를 자신들이 보살펴야 할 나라라고 생각했다. 이에 왜가 신라를 침입했을 때에도 기꺼이 도와주었던 것이다.
2) 5세기 고구려 vs 신라+백제
고구려의 왕은 신라의 왕과 신하에게 의복을 내려주어 마치 신하국처럼 대하고, 신라의 왕위 계승도 간섭했다. 신라는 이와 같은 고구려의 간섭에 벗어나기 위해 백제와 교류를 시작했고, 신라는 더 이상 고구려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 했다. 이에 고구려는 481년 신라를 공격했으나 신라는 백제의 지원으로 고구려를 물리치고, 493년 백제의 동성왕과 신라의 이찬 비지의 딸이 혼인을 하며 더욱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3) 6세기 고구려 vs 신라 vs 백제
동맹을 맺은 백제와 신라는 551년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유역의 땅을 빼앗었다. 그런 후 한강 상류 일대는 신라가, 한강 하류 일대는 백제가 가졌다. 당시 고구려에서는 귀족들간의 세력 다툼이 심하게 일어났으며,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에 땅을 빼앗긴 고구려는 나라가 조금 안정되자 신라에 은밀한 제안을 했다. 신라가 빼앗은 한강 유역을 돌려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을테니 백제와 연합해서 고구려를 공격하지 말라는 요구인 것이다. 그러나 신라는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일대까지 요구했고, 고구려와 협상을 마친 신라는 553년 백제를 공격해 한강 하류를 정복했다.
4) 7세기 고구려+백제 vs 신라
삼국 중 가장 힘이 약했던 신라는 한강유역을 갖게 되자 당나라와 마음 놓고 교류를 하였다. 또한 중국의 당나라와 군사 동맹까지 맺게 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의 세력을 막기 위해 힘을 합쳐 신라의 당성(경기 화성)을 공격했다. 게다가 백제는 대야성(경남 합천)까지 공격해 성을 함락하고, 그 와중에 대야성의 성주가 죽었다. 대야성은 당시 신라의 무열왕(김춘추)의 사위와 딸의 성으로 이에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하는 것에 사활을 걸게 되고, 마침내 삼국통일 이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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