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문명(도시국가)으로 보는 '메소포타미아'문명(기원전3500년 경)과 우리나라 역사(고조선:기원전2333년)는 1000년이 넘는 간격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어느 국가든 주변국과 교류하며,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창출해갑니다.(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더 나아가 각 나라는 독특한 지형과 기후가 있고, 그에따라 다른 생활방식과 문화로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 예: *이집트 문명은 사막으로 둘러싸인 폐쇄적 지형이기 때문에 내세적 신앙관* )
그런데 교과서 목차를 보면, 크게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구분지어져 있죠.
아시아의 고대와 유럽의 고대는 각 나라의 역사적 현장이 되는 배경의 무대 색이 다른데, 그것을 콕 집어서 각 나라의 역사를 파헤치기 너무 힘들기 때문이죠.
고대 중국 역사를 보다가 고대 인도 역사를 알아야 하고, 고대 유럽 역사와 고대 서남아시아(메소포타미아 문명 중심)의 역사들을 알아야 되기 때문에, 중국을 외우면 인도랑 헷갈리고, 유럽을 외우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와 이슬람 역사가 헷갈리기 시작하며 멘붕이 오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 나라별로 역사적 전개 과정을 그러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또한 각 나라든 한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작용하고, 그 작용점 중 교과서에서 생략하고 있는 과정을 알아내면, 세계사는 쉬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교과서 내신은 물론이거니와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상식이 되는 세계사의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번째로, 인류 역사의 첫 문명지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토대로 내신 향상과 상식 도모에 힘써보아요 ^^
*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흐름
수메르인의 문명형성 → 바빌로니아왕국 → 히타이트 → 페니키아와 헤브라이 → 아시리아 → 신바빌로니아 →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 알렉산드로스의 헬레니즘 → 파르티아 왕국 → 사산왕조페르시아 → 이슬람왕국
* 메소포타미아 문명
기원전 8000년 경 세계 각 국의 사람들은 대부분 열매를 찾거나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여기저기 옮기며 살았다. 그런데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기름진 땅에 도착했을 때에는 더 이상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이 곳은 기후가 따뜻하고, 땅이 기름지며 물이 풍부해서 먹을 것들이 풍족했다.
사람들은 농사가 유리한 이 곳 강가 유역에서 농경지를 이루고 살았다.
처음에 그들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상류 산기슭에 모여 살았다.
강의 하류는 축축한 늪지가 많아 농사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츰 자연환경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강물을 끌어들어 물길을 만들고, 홍수와 가뭄에 대비해 저수지도 만들었고, 늪지는 배들의 교로로 이용했다.
강의 하류 지역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영양 많은 흙을 실어다 주어서 곡물을 풍성히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수메르인들은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정착해 청동으로 만든 연장을 사용하여 농사를 발전시켰다.
농사가 잘 되고, 곡식이 많아지자 수메르인들은 농사에 매달릴 필요가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상인들이 생겨나고, 수공업자들도 생겨났다. 이로 인한 시장의 형성은 도시로 발전하는 기반이 된다.
그것이 바로 독립적인 국가의 성격을 띈 최초의 문명, ‘수메르 문명’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지형은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잇는 개방적 지형으로 다른 부족의 침략이 잦고, 홍수와 가뭄도 많았다. 그들은 이러한 두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 ‘지구라트’라는 신전을 지어 신을 섬겼고, 신전의 우두머리인 사제는 신을 대신해 사람들이 해야 할 일들을 구분했다.
사제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 대는 시설(관개시설)을 청소, 수리하는 일과 농사짓는 일, 상업 등의 일을 감독했고, 세금을 걷고 물자를 모았다가 다시 나누어 주는 일들을 했다.
사제의 권력은 막강했고, 사제들은 곡식과 가축의 수, 물건의 거래 등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필요로 했다. 그리하여 기원전 3100년 무렵, 수메르인들은 사물의 모양을 본뜬 ‘쐐기 문자’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지 못했고,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오직 서기들만 할 수 있었다.
서기들은 단순히 문서만 다루는 것이 아닌 회계와 건축에 필요한 측량까지 계산했다. 또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건축가, 교사, 의사, 등의 다양한 직업들이 생겨났다.
또한 수메르인들은 별이나 달의 움직임으로 미래의 일을 점치기도 했고, 달력을 사용하기도 했다(태음력).
수메르의 도시국가에서 농업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농업은 그 국가의 경제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도시국가는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더 유리한 물길을 차지하기 위해 잦은 전쟁을 벌였다.
이웃된 수메르 도시 국가들 사이에도 많은 전쟁이 있었고, 다른 부족들의 침략도 많았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기 위해 진흙 벽돌로 성벽을 쌓았다. 또한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의 역할을 중요시되면서, 점차 사제 중심의 도시국가에서 장군 중심으로 바뀌어갔다.
마침내 힘센 장군이 왕을 칭하고, 자신의 지위를 자손들에게 대물림하면서 왕조가 생겨나게 되었다.
수메르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며, 발전했다.


수메르 문명의 모습과 지구라트 아시리아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 시험에 꼭 나오는 팁 * 그냥 외우게 하지 말고,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문명 형성 조건 - 농사에 유리한 큰 강 유역, 청동기, 문자, 종교
2)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종교적 성격 - 현세적
* 개방적 지형으로 유이민의 침입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현세적 성격을 띄게 됨
3)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종교는 다신교(여러 신을 믿음)
4)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자
- 쐐기문자(표음문자: 발음기호, 소리를 기준으로 정한 한글과 같은 문자 : 음=발음 + 표시 = 표음)
5)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 - 태음력(달 숭배), 60진법(‘달의주기-보름‘을 기준으로 수를 셈)
이 가운데 기원전 1792년 함무라비 왕이 바빌론 왕국의 제6대 왕이 되었고, 그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통일되었다. 함무라비 왕이 통일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바빌로니아 제국이고, 함무라비왕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계급에 따라 차별적 보복주의를 시행하는 ’함무라비 법전‘을 만들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왕국은 철기를 사용한 인도 유럽계 유목민에게 멸망하였다.
히타이트 제국은 본래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주변에서 활동했었다.
그들은 히타이트 제국은 전쟁을 많이 했지만, 여러 나라의 물자와 문화를 전달하는 다리 구실도 하였다.
히타이트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는 물론 에게 해의 그리스 사람들에게 주로 구리와 곡물을 파는 등 활발한 무역활동을 했다.(이로 인하여 발달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리스 세계로 전해져 그리스 문명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기원전 1200년 무렵, 그들은 정체 모를 ‘*바다 민족’에 의해 멸망한다.
* 시험에 꼭 나오는 팁 * 그냥 외우게 하지 말고,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함무라비 법전의 성격 - 계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보복주의
2) 히타이트의 역할 - 아시아와 그리스 세계의 교량적 역할(다리를 놓아주는 중간자 역할)로 그리스 문명의 발전을 도모함
히타이트가 멸망하자, 히타이트의 뒤를 이어 히타이트 지역의 근처에 살고 있었던 페니키아인들이 히타이트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본디 그 지역은 농사가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은 히타이트가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 세계와 교역하던 일들을 대신해 맡기 시작했다. 특별히그들은 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
그들은 지중해를 넘어 대서양으로 나아가 오늘날의 영국까지 갔고, 3년에 걸쳐 아프리카를 돌기도 했다.
특별히 페니키아는 항해 중에 쉬어 가거나 무역 거점으로 사용할 식민 도시도 건설했는데 오늘날의 이탈리아 남부, 아프리카 북부, 에스파냐 남부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전역에 ‘카르타고’라는 식민도시를 세웠다(여관의 역할 : 일제강점기와 같은 식민 문화는 아님).
그들은 그곳에서 상업을 하고, 거래를 할 때, 쉽게 기록하기 위해 알파벳을 발명했다.
알파벳은 식민도시들을 거점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오늘날 유럽인들의 언어의 기반이 되었다.
(이 카르타고는 훗날 로마와의 전쟁(포에니전쟁)으로 쇠퇴하게 된다.)
페니키아 근방에 헤브라이는 주변국들이 여러 신을 믿는 다신교인 것과 다르게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종교) 국가였다. 그들은 다윗왕 때, 전성기를 맡게 되나 그의 아들 솔로몬 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리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남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하게 된다.
* 시험에 꼭 나오는 팁 * 그냥 외우게 하지 말고,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페니키아인들의 창시 언어 - 알파벳
2) 이스라엘의 종교적 성격 - 유일신 사상
아시리아 사람들은 기원전 2500년 쯤 메소포타미아 북쪽 산악지대에 터를 잡았다.
이곳은 개방적 지역으로 사방에서 외적의 침입이 많았고, 히타이트와 바빌로니아 왕국 사이에서 아시리아인들은 공격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히타이트가 멸망한 것을 계기로 최초로 서아시아 지역을 통일했으나, 너무도 잔혹하고, 강압적인 정치로 여러 민족들의 원성을 사다가 신바빌로니아의 반란으로 멸망하게 된다.
신바빌로니아는 바빌로니아 왕국의 전성기였던 함무라비왕 때의 영광을 목표로 서아시아지역을 대신해 영향력을 미치다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지역)에게 멸망하게 된다.
페르시아는 아시리아가 강압적인 정책으로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한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이민족들에게 ‘관용정책’을 펼쳤다. 각 민족의 종교와 풍습을 이해해주었고, 이로 인해 신바빌로니아의 포로로 잡혀있던 남유다 사람들은 본래 살던 곳이었던 헤브라이(이스라엘) 지역으로 돌아가 그들의 유일신, 야훼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크리스트교(지금의 기독교), 이슬람교 등이 형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페르시아의 전성기는 다리우스왕의 ‘아카메네스 페르시아’때이다.
그들은 이집트와 인도 동북부에 이른 대제국을 형성했다. 넓어진 제국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왕은 ‘왕의 길’을 정비하였고, ‘왕의 눈’, ‘왕의 귀’라는 감찰대(감시단)을 보내 넓은 지역을 다스렸다.
그러나 그들은 아테네와의 전쟁에 패배하게 됨으로 쇠퇴하게 되었고(살라미스 해전, 마라톤 전투), 후에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마케도니아 출신으로 20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유럽(아테네, 테베, 스파르타의 도시국가 등)을 통일하고, 페르시아는 물론 인도의 동북부 지역까지 대제국을 형성했다.
그는 그리스 문화를 중심으로 페르시아 지역과 통합을 도모하는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했으나 33살의 나이로 죽고 만다. 그가 죽은 후, 계속된 전쟁으로 그의 지역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마케도니아, 페르시아로 나뉘게 되는데,
후에 페르시아 지역은 ‘파르타고’가 건설되면서 헬레니즘의 영향력을 벗어나게 된다.
파르타고는 ‘사산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게 되며, 파르타고와 사산왕조페르시아는 비단길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교역했던 중계무역으로 번성하게 된다.
특별히 사산왕조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영광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다.
조로아스터교는 아케메네스 때부터 믿었던 종교로 선한신과 악한신의 싸움에서 선한신이 이기도록 마음을 잡을 것을 주장하는 종교로, 선한 신아후라 마즈다와 불을 숭배했다.
조로아스터교는 훗날 이슬람교, 크리스트교의 교리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고,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이후 이슬람 세력에게 멸망하게 된다.
* 시험에 꼭 나오는 팁 * 그냥 외우게 하지 말고, 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아시리아의 멸망원인 - 강압적 정치
2) 페르시아의 전성기 -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3)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정치 방법 - 왕의 길, 왕의 눈, 왕의 귀를 통함 감찰대 파견, 중앙집권적
4) 파르티아와 사산왕조페르시아의 번성 - 중계무역
5)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종교 - 조로아스터교(선한 신 아후라 마즈다와 불 숭배)
요약)
1) 농사가 잘 되는 큰 강 유역(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 티그리스)에 도시국가, 문명 발생
2) 처음에는 홍수 등의 두려움으로 상류 거주
3) 이후 관개시설(둑, 저수지) 설치로 하류 거주
(하류지방=비옥한 땅, 농산생산물이 풍부해 시장이 발달되면서 도시국가 형성)
4) 농사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를 토대로 제사장(지구라트)이 지배계급으로 형성
5) 비옥한 토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비옷한 지역으로 유이민의 침입이 많아 현세적 종교를 믿음
6) 많은 유이민들의 침입으로 장군, 왕들이 형성 : 여러 도시국가들의 전쟁 후 바빌로니아 왕국이 형성됨
7) 바빌로니아 왕국은 철기를 사용한 히타이트에게 멸망함
8) 히타이트는 발달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화를 그리스에게 전달해 줌으로 그리스 문명에 영향을 미침
9) 히타이트가 멸망 후, 페니키아가 히타이트의 뒤를 이어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와의 무역에 치중을 함
10) 이 후 바빌로니아와 히타이트 사이에서 약자였던 아시리아가 서아시아를 통일하면서 강압적 정치를 행함
11) 아시리아의 강압적 정책으로 신바빌로니아가 반란을 일으킴
12) 페르시아가 신바빌로니아, 이집트를 통일하고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때, 전성기를 이룩함.
13) 페르시아는 아테네와의 전쟁 이후, 쇠퇴하여 유럽 지역의 후진국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게 멸망
14) 알렉산드로스 사후 페르시아는 파르티아, 사산왕조페르시아로 이어가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이슬람국에게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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